Review

150430 뮤지컬 팬텀 후기(스포일러 有)

sayu 2015. 5. 1. 02:50

뮤지컬 팬텀 

충무아트홀, 삼성카드 셀렉트 첫날

류정한/임선혜/이정열/신영숙/김주원/알렉스


EMK의 새로운 작품, 내용을 아무리봐도 오페라의 유령 아류작 같았지만(...)

판본이 다른 버전이려니 하고 보러갔다.


무대

생각보다 꽤 공을 들였고 2층에서 보기에 샹들리에나 무대 오른편 덩쿨같은 기둥, 인물들의 방 등 여러 뮤지컬에서 어색한 영상으로 때우던 걸 실제로 많이 만들었다는 점에서 큰 점수를 주고 싶다. 실제로 무대바닥만 있고 어설픈 건축물들 몇개 세워두고 여기가 어디이려니 상상해야 되거나 납득해야되는 무대들이 너무나도 많은지라, 어설프게 만든거라도 노력하려는 의지가 보였다. 물론 영상도 많이 쓰긴 하지만 시간적 배경이라는 느낌이 강하므로 이 부분은 만족. <드라큘라>처럼 큰 무대가 돌아가느라 암전 시간이 긴거에 비하면 암전도 짧은 편이다 싶다.

오페라극장의 가장 높은 곳에서 가장 낮은 곳인 지하 묘지까지 보여주려고 애썼다. 팬텀은 가장 높은 곳과 가장 낮은 곳을 왕래하며 돌아다녔다.


의상

자주 도맡아하던 디자이너가 아니라서 기대가 컸는데, 솔직히 별로였다.

팬텀의 옷은 심플하고 고급스러웠으면 했는데 그의 취향상 그럴 수 없었는지 화려하지만 그 캐릭터에 어울리는 화려함은 아니다. 지나치게 반짝이가 많은 듯.

크리스틴은 미녀와 야수 벨st 흰상의, 파란치마는 좋았지만 목에 달린 파란 리본은 정말 아니었다. 나중에 비세라토 장면에서 하얀색 드레스를 입는데, 그것도 촌스럽다... 차라리 선혜 크리스틴 프로필처럼 노란색 드레스가 나았을 것 같기도 하다. 제일 나앗던 건 요정여왕 의상뿐이었다.

옷을 가장 많이 갈아입는 건 팬텀도 아니고 크리스틴도 아닌 카를로타다. 흰색과 하늘색이 섞인 드레스, 검정 레이스에 빨간색 드레스, 충격의 초록색 드레스, 무대 의상(아이다, 여신 의상 등), 마지막으로 입는 보라색 드레스 등 다양한 드레스가 있는데 한두벌은 괜찮지만 나머지는 충공깽... 디바 자부심이 강한 캐릭터인데 좀 더 예쁜 걸 입힐 수 없었는지 모르겠다. 

*

후기

1막을 보고나서 드는 생각은 왜 제목이 <팬텀>인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는데, 1막은 크리스틴과 카를로타가 주인공인 극이고 오히려 팬텀은 조연같고 비중이 없다. 왜냐하면 선혜크리스틴과 영숙카를로타가 너무나도 잘하기 때문이고(팬텀의 레슨이 전혀 필요없는 크리스틴... 팬텀이 가르치기엔 너무나도 출중한 크리스틴이다.) 1막은 너무나도 많은 설명을 하고 싶어서 정신없이 장면이 전환되는데다가 한 장면에서 나오는 인물조차 많다. 앙상블 많이 쓴 건 좋은데 여 앙상블들은 노래보다도 대사를 말하거나 춤을 더 많이 춘 듯하고, 크리스틴과 노래하는 남 앙상블들은 실력이 부족했다. <드라큘라> 볼 때 가장 화났던 것이 주인공들의 이야기를 하느라 바빠서 앙상블이 거의 필요없는 극이었어서 뭐하러 앙상블 넣었는지 이해가 잘 되지 않았던 점이었는데, <팬텀>에서도 앙상블들은 배경에 불과한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킬링 넘버의 부재도 정신없음에 일조했다고 생각한다. 크리스틴의 주제가 같은 "멜로디"는 자주 불러서 익숙하기라도 하지, 1막에서 기억에 남는 건 반복이 있었던 레슨송, 강렬했던 카를로타의 모두 다 내거야? 정도... 그외에는 넘버도 잘 기억나지 않고 반복되는 멜로디도 딱히 없어보인다. 

그래서 2막이 급작스러운 전개와 허무한 결말로 끝나도 선택과 집중이라는 면에서는 1막보다는 우세하다.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살릴 것인지 집중한 것 때문에 전하고 싶은 주제가 이런거구나 를 좀 느낄 수 있다. 

까리에르와 팬텀이 부르는 듀엣곡이나 팬텀과 크리스틴이 부르는 듀엣곡 등 차라리 2막의 넘버가 더 기억에 남는다. 

그리고 각 넘버의 번안이 촌스럽다는 것도 문제인데, 팬텀이 크리스틴에게 "위대한 운명적인 아름다움"이라고 두 번 정도 말하는데 도대체 수식어를 얼마나 많이 붙이고 싶은 것인지 알 수가 없다... 게다가 고심해서 있어보이려는 형용사를 이어붙인게 어울리지도 않는다 ㅋㅋㅋ 소리내어 읽어보면 얼마나 어색한지 바로 알 수 있는 것들을 그냥 문장으로 단어로 쓰기만 한 것인지 도대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이 작품에 기획사가 굉장히 많은 공을 들인 걸로 생각하는데 번안이 부족한 점은 문제라고 생각한다. 여타 다른 장르보다도 대사와 노래로 말하는 뮤지컬에서 매끄럽게 다듬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 싶은데... 라이센스극의 한계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번역, 번안이 가장 1순위의 문제가 아닐까 싶다. 그걸 자연스럽게, 더 낫게 만드는게 번안인데 무대나 의상을 준비한 정성을 여기에 쏟았다면 더 매끄럽고 자연스러운 작품이 됐을거라고 생각한다. 어느 작품이든 남는 대사라든지, 와닿는 가사라는게 있어야 하지 않나.

그리고 2막이 좋았던 이유는 벨라도바를 회상하는 걸 발레로 표현해준다는 거다. 발레를 처음 보는 문외한이라 몸으로 표정으로 표현하는 벨라도바라는 캐릭터가 (물론 노래도 하지만) 더 신비스럽게 느껴졌고, 까리에르의 속마음도 이해가 가긴 한다. 후반부에 이어지는 팬텀 감정선도 설명이 되지만 온전히 팬텀만의 이야기는 부족한 것 같다. <팬텀>에서 말하고자 하는게 에릭의 이야기라고 표방하고 있지만 정작 에릭에 대한 건 본인보다도 주변인물로 더 많은 설명을 하므로 직접적이지 않아 아쉽다. 마지막 장면은 어찌보면 지나치게 허무하다 싶어서... 

결국 부족한 이야기나 관계성을 배우들의 연기와 노래로 커버를 하게 되는데 그런 점에선 만족이나 이야기 자체, 뮤지컬 넘버가 갖는 힘이라는 점에선 굉장히 부족한 뮤지컬이라고 생각한다.

*

크리스틴을 성악가들로 보고 들을 수 있는 것과 발레 역시 유명한 발레리나들로 섭외한 것은 다른 뮤지컬과는 뛰어난 점이다. 전날 본 <파리넬리>에서 루이스 초이 배우를 보고 굉장히 놀랐는데 임선혜 배우를 보고 성악의 꽃은 소프라노라는 생각을 굳히게 되었다. 요새는 뮤지컬 배우 중에서 성악과를 나온 분들이 꽤 많은데, 좋아하는 배우의 인터뷰에서 성악 발성은 뮤지컬과 오페라나 다른 성악 부분에서 완전히 다른 소리라고 했을 때 당시에는 와닿지 않았다. 하지만 실제로 성악가들의 무대를 보니 평상시에 생각하던 뮤지컬 배우들의 성악 발성은 비교할 수 없다는 확실히 알게 됐다. 나는 성악 발성을 좋아하는 편이었는데, 진정한 성악(?)쪽은 소리 자체가 신기하고 완전히 달라서 뮤지컬 발성을 좋아하는 걸로 잠정적 결론을 내렸다.

*

팬텀의 기분 상태에 따라서 가면을 바꿔쓰는데, 그 가면이 의미하는게 이해가 되는 건 두세개 정도... 첫날 후기에서 가면팔이 운운했던 것도 가면을 모아둔 장을 보니 이해가 되었다(...)

재밌는 장면은 카를로타가 등장한 장면들, 팬텀과 크리스틴의 피크닉 장면 정도... 팬텀에서 유일하게 재밌는 캐릭터는 카를로타와 그의 남편이다. 두 사람은 서로를 매우 사랑하며(!) 그게 다른 사람에게는 피해가 될 수도 있지만(극장의 명성이라든가, 같이 일할 배우들이라든가) 카를로타를 위해서 극장을 산 남편의 애정(그녀가 노래를 못하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이 따뜻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두 사람은 서로를 애칭으로 부르는데 애칭이 매우 현대적(!)이라 놀랐고 뜻밖의 케미는 덤ㅋㅋㅋ  

*

기대가 컸는데 기대만큼 충족하지 못한 뮤지컬이라 한, 두번 보는 걸로 접을 듯.

만약 본다면 다른 배우가 연기하고 노래하는 크리스틴이 궁금해서일거다...  


그리고 배역이 바꼈으면 바꼈다고 문자라도 넣어줬어야 하지 않나... 보러가면서 알게 됐는데, 보통 캐스팅이 바뀌면 티켓 취소해줘야하는건데 유야무야 넘어가는 건 잘못 했다. 에녹 배우의 쾌유를 빌며, 어제 데뷔하게 된 강성욱 배우 축하합니다.